
주연평을 아십니까 ?
<화소도>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의 캐스팅을 보면 지금도 놀라운데 성룡과 유덕화, 홍금보와 양가휘라는 8,90년대를 주름잡던 스타급 배우들이 망라되어 있다. 더구나 조연급 정도이기는 하지만 성룡이 이 영화에 출연한 것도 놀라운데 이 영화는 말하자면 '홍콩 느와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피튀기는 영화에 해당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성룡과 유덕화의 은원 관계가 전개되고 나중에는 수감된 이들이 '화소도'라는 그러니까 '알카트라즈'같은 섬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한다는 전개로 구성되어 있다.
또 <대복성>이라는 영화가 있다. 쇼브라더스의 무협 영화 전성기의 가장 큰 스타인 왕우와 성룡인 주연을 맡고 있는 모험 영화였다. 일설에 의하면 이 영화의 제작 배경이 좀 우습게 들리는데, 중화권 암흑가에 힘이 있다는(뭐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왕우가 암흑가에 의해 위험에 처한 성룡을 도와주고 성룡이 왕우가 제작한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들려온다. 영화의 완성도는 뭐 그냥 그런 편이었다.
주연평이라는 인물은 대만 상업 영화계에서는 꽤 중요한 인물이다. 홍콩 영화 전성기에 대만에서 좀 질은 떨이지기는 했다지만(안 봤으니 장담은 못하지만) 무술 영화를 만들며 나름 알려진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결정적인 영화'는 별로 없지만 유명 포탈 사이트에서 대략 검색해도 50편에 이를 정도다. 그 중에는 무협 영화, 전쟁 영화, 가족 오락 영화 등이 망라되어 있고 한참 홍콩 영화가 인기를 끌던 시절에는 이 감독의 영화들도 상당히 많이 들어 와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은 한 마디로 새롭지는 않다.
엄밀히 말해 주연평은 유행하는 장르를 빠르게 따라서 만드는 재주가 뛰어난 감독으로 보인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화소도>라는 영화도 홍콩 영화 감독 협회 기금을 만들기 위해 만들었다는 <쌍용회>와 비슷한 목적으로 만든 영화로 기억된다. 사실 개인적으로 <화소도>라는 영화에 대한 기억은 별로 좋은 편은 아니다. 아마 재개봉관에서 봤던 것 같은데 일단 캐스팅은 화려하지만 영화가 빨리 전개하려는 욕심만 있지 감정이 없다고나 할까 당시 처절하기까지 했던 오우삼의 홍콩 느와르 클래식들에 비하면 깊이가 떨어졌고 산만했다고 기억된다. 필름 질감이나 세트도 좀 엉성하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그가 만든 최신작 <쿵푸 덩크>에서도 별로 바뀌지 않는 것 같다.
화려한 외양, 빈약한 내실
일단 <쿵푸 덩크>의 외양은 누가 생각해도 주성치의 초히트작 <소림 축구>를 연상시킨다.
캐스팅도 화려하다.
중화권 최고의 가수이자 최근 연출작 <보이지 않는 비밀>로 재평가 받고 있는 주걸륜이 주인공을 맡았고 좌우에는 대만 출신의 꽃미남 배우들인 진백림과 진초하가 출연한다. 사부들로는 고웅, 오맹달, 양가인, 증지위 같은 홍콩 영화계의 검증된 중견 배우들이 출연하고 연인 역으로는 '트윈스'의 채탁연이 출연한다. 뭐 이쪽에 관심 있는 분들이 아니면 낯선 배우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중화권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익숙한 얼굴들이다.
그리고 홍보된 것처럼 농구 장면에 쿵푸를 섞은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뭐 제목에서 느껴진 것처럼 우리가 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알다시피 <소림 축구> 때문이다.
당연히 황당함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것이고 사실 괜찮은 황당함을 기대하며 이 영화를 보는 것 아니겠나 ?
하지만 이 영화는 예전에 <화소도>라는 영화를 봤던 산만한 구성을 그대로 지닌다.
이 영화에는 도대체 어디에 방점이 찍혀 있는지 리듬감이 전혀 없다고나 할까 ?
영화는 부자 관계(주걸륜-증지위)를 강조하는 건지 팀웍(농구팀 간의 유대)을 강조하는 건지 조촐한 첫사랑(주걸륜-채탁연)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영화에서 비교적 충실히 설명되고 있는 캐릭터는 당연히 주인공인 주걸륜이지만 이 영화는 앞서 써 놓았듯 당연히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꽃미남 팀원들(진백림, 진초하)이 아픔이 있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설명이 되기는 하지만 영화의 균형 이동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불쑥 튀어나오고 릴리 역의 채탁연이 샤오랑 역의 진초하를 좋아하는 것은 알겠으나 실연 당하는 장면도 불쑥 튀어나오고 만다.
이 영화에는 내러티브의 내적 논리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나쁜 놈이니까 이겨야 하고 같은 팀이니까 좋은 애들인 거고 무술을 해야하니까 하는 거라는 식의 당위만이 존재한다.
자연스럽게도 이 영화는 벤치 마킹 대상인 <소림축구>의 내적인 필연성. 가령 주성치가 찌질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형제들을 찾아가는 웃기지만 중요한 장면들 같은 영화의 내적인 논리가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소림 축구>는 얼마나 뛰어난 영화였던가 ?
결국 비슷한 목표를 추구했던 <쿵푸 덩크>와 <소림 축구>를 비교해 보면 두 영화의 '내공'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두 영화 일종의 농담이기는 하지만, 주성치는 <소림 축구>를 매우 진지하게 찍었다. 그는 무협의 세계가 무너진 것을 진심으로 통탄한다. 그래서 소림의 고수들(주성치의 사형제)은 자신의 쓸모 없는 무술적인 능력을 버리고 파산하기 직전이거나 해고 직전의 노동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이건 일종의 주성치가 꿈꾸는 판타지와 홍콩 자본주의 사회라는 현대의 경계를 확실하게 구분짓는 문명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하지만 <쿵푸 덩크>의 무림인 '쿵푸 학교'는 도심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고 비겁한 악인인 교장과 그렇지 않은 사부들과 주걸륜이라는 '의인' 영웅이라는 고답적인 대립 구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 이야기가 빈약하게 느껴졌는지 아니면 <소림축구>를 의심했는지 '사부'나 '사형제'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지 않고(적어도 농구를 하는데 있어서) 엉뚱하게도 만화 <슬램 덩크>의 구도를 끌어들인다.
적어도 농구팀이라는 세계 안에서 주걸륜은 리바운드의 제왕으로 성장하는 강백호를 연상시키고 두 꽃미남들은 서태웅같은 인물들의 변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채탁연의 배역은 강백호의 로망인 농구팀 매니저 소연을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쿵푸 덩크>는 청춘 영화로서도, <소림 축구>가 열었던 무협 영화의 접점에서도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나름 완성도를 갖춘 CG를 통해 호쾌한 슬램 덩크 장면들이 이목을 끌기는 하지만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사실 아무 것도 건질만할 것이 없는 영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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