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두비>가 끝내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12세 이상 관람가’로 상영되었으며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이 영화가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재심을 거쳐 끝내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말로만 듣던 문제의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분명히 이 영화는 불온하다.
하지만, 적어도 표현 수위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의 표현 강도는 결코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던 영화들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언론에 보도된 영등위 측의 재심의 결과에 대한 변은 이렇다.
“전체적인 내용 표현과 선정성 측면을 고려할 때 ‘15세이상 관람가’ 등급에 적절하다는 소수 의견이 있었지만, 여고생이 특정업소(스포츠마사지)에서 일하는 장면 등의 묘사가 구체적으로 되어 있고, 과도한 비속어나 비하발언 등 표현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나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내렸다”
더불어 영등위가 제작사에 전달한 등급분류결정서에 의하면 선정성, 대사 모방위험에서 청소년관람불가로 판정했던 반면 재심의에서는 이보다 완화시켜 선정성과 대사에서는 15세이상관람가로 판정했으며 6개 항목에서 청소년들이 관람할 수 있는 등급을 매겼음에도 ‘모방위험’이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사유가 되었다고 한다. <노컷뉴스 6.13.>
그렇다.
결국 청소년들이 <반두비>를 보게 되면 이 영화의 ‘당돌한’ 주인공 민서(백진희)를 따라할 ‘모방 위험’이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 이 영화 불편하다. 근데 왜?
<반두비>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몇몇 시퀀스들이 있다.
특히 필자처럼 30대를 넘어선 소위 ‘기성세대’에게 이 영화의 캐릭터 민서가 벌이는 일들 중 일부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불편한 장면으로 말하자면 민서가 남성들의 자위행위 즉 유사성행위를 대신 해주는 ‘스포츠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민서는 비싼 원어민 영어 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알바’자리를 구하다 결국 대학생으로 속이고 ‘여대생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고 결국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뿐 아니라 어머니에게 용돈을 주는 ‘효도’까지 한다. 더 부담스럽게 느껴진 장면은 민서가 카림(마붑 알엄 펠리)에게도 이 행위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으면 <반두비>가 꽤 표현 수위가 높은 영화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는 설정이 그러할 뿐 노골적인 표현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업소’ 장면에서는 민서의 얼굴만 나올 뿐이고 카림과의 장면은 좀 더 직접적이지만 표현 수위 자체가 높은 것은 아니다. 사실 카림에 대한 민서의 이러한 행동은 17세에 불과한 이 소녀가 ‘사랑’을 배운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면 영화적으로는 꽤 설득력이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아버지’라고 부를만한 존재가 없이 ‘어머니’와 같이 살아가는 이 소녀가 이성 관계에 대해 배운 것은 오직 그런 방식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영화의 이런 표현에 대해 느끼는 관객의 몫일 텐데, 영등위원들은 꽤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는 청소년들이 꽤 많이 유사성행위 업소에 취업할 정도의 영향을 받을 정도로....
물론 <반두비>에는 이러한 장면 외에도, 현 정권에 호의적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가령 방학을 맞은 민서와 헤어진 친구들이 탑승하는 마을버스에는 ‘MB'라는 상호가 슬쩍 드러난다. 마음대로 해석하자면 영어 학원 수강을 결정한 그 친구들은 ’MB식 교육행 버스‘에 탑승한다. 또 PC방에서 민서 옆 자리 사람은 무엇인가(혹시 미국산 소고기?)를 맛있게 드시는 현직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웹사이트의 기사를 읽고 있고 학원의 원어민 강사는 ’왜 한국인들은 대통령을 쥐에 비유하느냐 ?‘라고 묻는다. 그리고 편의점을 찾은 만취한 손님은 대통령 욕을 한다. 조금 더 심하게 해석하자면 집에서 빨래를 널던 민서는 ’쥐‘가 방해한다고 화를 낸다. 혹시 이러한 장면 속에도 ‘모방 위험’ 있다고 영등위원들이 ‘모방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는지는 역시 모를 일이다.
* 한국 영화 최강의 여고생 캐릭터, 민서
사실 필자가 <반두비>를 보며 놀랐던 것은 민서의 캐릭터 때문이었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 영화의 주인공 민서는 ‘한국 영화 최강의 여고생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 한국의 어른들은 민서에게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민서의 부모인 은주(이일화)는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모성의 권위를 지니지 못한 인물이다. 스스로 ‘민서의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끝을 흐리는 기홍(박혁권)은 민서에게 ‘넌 단지 엄마의 섹스 파트너일 뿐’으로 치부되는 대상이다. 심지어 민서가 교육의 장에서 만나는 담임교사(김재록)와 영어 학원 강사 역시 아무런 권위를 갖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여성 비하 발언 혐의를 받는 영어 학원 강사는 민서의 물리적 응징을 당하고 담임교사는 민서에게 결정적인 약점을 잡혀 오히려 우호적인 관계가 되기는 하지만 역시 권위를 인정받지는 못한다. 심지어 영화의 후반부, 민서가 습격해 난동을 부리는 카림의 월급을 떼어 먹은 사장의 집에서 민서의 머리끝을 잡아끌며 싸우는 유일한 존재는 ‘왜 착한 우리 아빠에게 난리냐’라고 외치는 그 사장의 ‘고딩’ 딸뿐이다. 이 영화에서 민서는 한국 성인 남성의 ‘남근성’을 노골적으로 조롱한다. 민서가 기홍에게 내뱉는 대사들이나 미국인 백인 영어 강사에게 하는 응징은 주류 남성들의 ‘남근성’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성을 담고 있다.
민서는 ‘촛불 소녀’다.
영화 초반부에 집에 도착해 민서가 툭 던져놓는 민서의 가방에는 당당하게 ‘촛불 소녀 버튼’이 붙어 있다. ‘촛불 소녀’ 민서는 오류를 범하기는 하지만 거침이 없다. 민서에게 한국 사회의 남성적 권위는 오직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같은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 노동자’ 카림과 로맨스를 펼친다. 민서는 카림과의 로맨스에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이다. ‘결혼하자’라는 말을 하는 것도, 카림의 소원인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행위하는 것도 모두 민서다. 우리는 <반두비>를 통해 한국 영화 최강의 주체성을 지닌 여고생 캐릭터 아니 여성 캐릭터를 보게 된다. 결국 이 영화가 꿈꾸는 것은 새로운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한 스님의 인터뷰는 <반두비>의 주인공 민서를 저절로 떠오르게 한다.
그러니까 제가 작년 '촛불' 때 한 이야기가 있어요. 촛불을 들고 나왔던 소년 소녀들이 투표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요. 그 아이들이 희망이라고. 국민의 가장 소중한 권리인 투표권을 잘 행사하지 않으면 정말 큰 일 나는구나. 지금 많은 이들이 뼈아프게 느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오마이뉴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인터뷰 中
* 결국 시대와의 대화
감독 신동일에게 있어 ‘영화’는 곧 시대와의 대화다. <방문자>에서 신동일은 사회적 약자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가까워지기는 영 힘들어 보이는 범생이 여호와의 증인 청년과 좌파 지식인과의 이상적인 연대를 그렸다. 자본주의적 현실과 계급적 질서가 기초적인 인간관계까지 파괴한다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좀 더 신랄한 정치적 영화였다.
그에 비하면 <반두비>는 <방문자>와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영화다. <반두비>는 <방문자>에 비해 직접적으로 한국 사회를 야유하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비해 인간과의 관계를 따뜻하게 풀어간다.
<반두비>에서 한국의 청소년 캐릭터는 그동안 박탈되었던 시민적 발언권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민서는 자신을 압박하는 어떤 사회적 제도에도 굴하지 않는다. 워낙 민서의 캐릭터가 강력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카림 캐릭터는 생기가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느낌은 필자를 비롯한 한국의 관객들이 느끼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서적인 거리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민서는 카림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해 좀 더 뚜렷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반두비>는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불온한 영화다.
그건 이 영화가 그동안 늘 스테레오 타입으로 전시되어 오고는 했던 ‘청소년’과 ‘외국인 노동자’에게 시민적 발언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의 감독이 그것을 시도했다면 필자는 적어도 절반은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12세 이상 관람가’로 상영되었으며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이 영화가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재심을 거쳐 끝내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말로만 듣던 문제의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분명히 이 영화는 불온하다.
하지만, 적어도 표현 수위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의 표현 강도는 결코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던 영화들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언론에 보도된 영등위 측의 재심의 결과에 대한 변은 이렇다.
“전체적인 내용 표현과 선정성 측면을 고려할 때 ‘15세이상 관람가’ 등급에 적절하다는 소수 의견이 있었지만, 여고생이 특정업소(스포츠마사지)에서 일하는 장면 등의 묘사가 구체적으로 되어 있고, 과도한 비속어나 비하발언 등 표현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나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내렸다”
더불어 영등위가 제작사에 전달한 등급분류결정서에 의하면 선정성, 대사 모방위험에서 청소년관람불가로 판정했던 반면 재심의에서는 이보다 완화시켜 선정성과 대사에서는 15세이상관람가로 판정했으며 6개 항목에서 청소년들이 관람할 수 있는 등급을 매겼음에도 ‘모방위험’이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사유가 되었다고 한다. <노컷뉴스 6.13.>
그렇다.
결국 청소년들이 <반두비>를 보게 되면 이 영화의 ‘당돌한’ 주인공 민서(백진희)를 따라할 ‘모방 위험’이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 이 영화 불편하다. 근데 왜?
<반두비>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몇몇 시퀀스들이 있다.
특히 필자처럼 30대를 넘어선 소위 ‘기성세대’에게 이 영화의 캐릭터 민서가 벌이는 일들 중 일부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불편한 장면으로 말하자면 민서가 남성들의 자위행위 즉 유사성행위를 대신 해주는 ‘스포츠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민서는 비싼 원어민 영어 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알바’자리를 구하다 결국 대학생으로 속이고 ‘여대생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고 결국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뿐 아니라 어머니에게 용돈을 주는 ‘효도’까지 한다. 더 부담스럽게 느껴진 장면은 민서가 카림(마붑 알엄 펠리)에게도 이 행위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으면 <반두비>가 꽤 표현 수위가 높은 영화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는 설정이 그러할 뿐 노골적인 표현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업소’ 장면에서는 민서의 얼굴만 나올 뿐이고 카림과의 장면은 좀 더 직접적이지만 표현 수위 자체가 높은 것은 아니다. 사실 카림에 대한 민서의 이러한 행동은 17세에 불과한 이 소녀가 ‘사랑’을 배운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면 영화적으로는 꽤 설득력이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아버지’라고 부를만한 존재가 없이 ‘어머니’와 같이 살아가는 이 소녀가 이성 관계에 대해 배운 것은 오직 그런 방식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영화의 이런 표현에 대해 느끼는 관객의 몫일 텐데, 영등위원들은 꽤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는 청소년들이 꽤 많이 유사성행위 업소에 취업할 정도의 영향을 받을 정도로....
물론 <반두비>에는 이러한 장면 외에도, 현 정권에 호의적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가령 방학을 맞은 민서와 헤어진 친구들이 탑승하는 마을버스에는 ‘MB'라는 상호가 슬쩍 드러난다. 마음대로 해석하자면 영어 학원 수강을 결정한 그 친구들은 ’MB식 교육행 버스‘에 탑승한다. 또 PC방에서 민서 옆 자리 사람은 무엇인가(혹시 미국산 소고기?)를 맛있게 드시는 현직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웹사이트의 기사를 읽고 있고 학원의 원어민 강사는 ’왜 한국인들은 대통령을 쥐에 비유하느냐 ?‘라고 묻는다. 그리고 편의점을 찾은 만취한 손님은 대통령 욕을 한다. 조금 더 심하게 해석하자면 집에서 빨래를 널던 민서는 ’쥐‘가 방해한다고 화를 낸다. 혹시 이러한 장면 속에도 ‘모방 위험’ 있다고 영등위원들이 ‘모방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는지는 역시 모를 일이다.
* 한국 영화 최강의 여고생 캐릭터, 민서
사실 필자가 <반두비>를 보며 놀랐던 것은 민서의 캐릭터 때문이었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 영화의 주인공 민서는 ‘한국 영화 최강의 여고생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 한국의 어른들은 민서에게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민서의 부모인 은주(이일화)는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모성의 권위를 지니지 못한 인물이다. 스스로 ‘민서의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끝을 흐리는 기홍(박혁권)은 민서에게 ‘넌 단지 엄마의 섹스 파트너일 뿐’으로 치부되는 대상이다. 심지어 민서가 교육의 장에서 만나는 담임교사(김재록)와 영어 학원 강사 역시 아무런 권위를 갖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여성 비하 발언 혐의를 받는 영어 학원 강사는 민서의 물리적 응징을 당하고 담임교사는 민서에게 결정적인 약점을 잡혀 오히려 우호적인 관계가 되기는 하지만 역시 권위를 인정받지는 못한다. 심지어 영화의 후반부, 민서가 습격해 난동을 부리는 카림의 월급을 떼어 먹은 사장의 집에서 민서의 머리끝을 잡아끌며 싸우는 유일한 존재는 ‘왜 착한 우리 아빠에게 난리냐’라고 외치는 그 사장의 ‘고딩’ 딸뿐이다. 이 영화에서 민서는 한국 성인 남성의 ‘남근성’을 노골적으로 조롱한다. 민서가 기홍에게 내뱉는 대사들이나 미국인 백인 영어 강사에게 하는 응징은 주류 남성들의 ‘남근성’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성을 담고 있다.
민서는 ‘촛불 소녀’다.
영화 초반부에 집에 도착해 민서가 툭 던져놓는 민서의 가방에는 당당하게 ‘촛불 소녀 버튼’이 붙어 있다. ‘촛불 소녀’ 민서는 오류를 범하기는 하지만 거침이 없다. 민서에게 한국 사회의 남성적 권위는 오직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같은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 노동자’ 카림과 로맨스를 펼친다. 민서는 카림과의 로맨스에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이다. ‘결혼하자’라는 말을 하는 것도, 카림의 소원인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행위하는 것도 모두 민서다. 우리는 <반두비>를 통해 한국 영화 최강의 주체성을 지닌 여고생 캐릭터 아니 여성 캐릭터를 보게 된다. 결국 이 영화가 꿈꾸는 것은 새로운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한 스님의 인터뷰는 <반두비>의 주인공 민서를 저절로 떠오르게 한다.
그러니까 제가 작년 '촛불' 때 한 이야기가 있어요. 촛불을 들고 나왔던 소년 소녀들이 투표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요. 그 아이들이 희망이라고. 국민의 가장 소중한 권리인 투표권을 잘 행사하지 않으면 정말 큰 일 나는구나. 지금 많은 이들이 뼈아프게 느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오마이뉴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인터뷰 中
* 결국 시대와의 대화
감독 신동일에게 있어 ‘영화’는 곧 시대와의 대화다. <방문자>에서 신동일은 사회적 약자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가까워지기는 영 힘들어 보이는 범생이 여호와의 증인 청년과 좌파 지식인과의 이상적인 연대를 그렸다. 자본주의적 현실과 계급적 질서가 기초적인 인간관계까지 파괴한다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좀 더 신랄한 정치적 영화였다.
그에 비하면 <반두비>는 <방문자>와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영화다. <반두비>는 <방문자>에 비해 직접적으로 한국 사회를 야유하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비해 인간과의 관계를 따뜻하게 풀어간다.
<반두비>에서 한국의 청소년 캐릭터는 그동안 박탈되었던 시민적 발언권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민서는 자신을 압박하는 어떤 사회적 제도에도 굴하지 않는다. 워낙 민서의 캐릭터가 강력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카림 캐릭터는 생기가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느낌은 필자를 비롯한 한국의 관객들이 느끼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서적인 거리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민서는 카림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해 좀 더 뚜렷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반두비>는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불온한 영화다.
그건 이 영화가 그동안 늘 스테레오 타입으로 전시되어 오고는 했던 ‘청소년’과 ‘외국인 노동자’에게 시민적 발언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의 감독이 그것을 시도했다면 필자는 적어도 절반은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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